황금이모? 호구이모?

구름이 2021. 12. 1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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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둥이 이모의 고군분투 생존기

 

 

여기 어느 날 갑자기 이모라는 지위를 부여 받은 여자가 있다. 그것도 쌍으로 두 명에게서! ‘이모’라는 지위를 받아들자마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이 여자는 덜컥 강제로 어른이 된다. 어리둥절한 마음을 느낄 겨를도 없이 여자는 이 지위에 올라탄 채 ‘쌍둥이 조카 육아’라는 새로운 세상을 맞닥뜨린다. 때로는 육아의 주체 인력으로, 때로는 육아의 보조 인력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이 여자는 ‘이모’라는 이름 아래서 조카들의 성장을 꼼꼼히 지켜본다. 그러나 이 책은 육아를 다루는 글이 결코 아니다. 어느 편협한 세상에서 작은 몸집, 좁은 눈, 얕은 안목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특히 이 책은 조카와 이모의 성장 경로를 견주어 보는 방식으로 두 가지의 삶을 추적해 나가면서 일상이 주는 소박한 기적을 보여 주는 글이다. 또한 누군가의 이모로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여자들, 한두 번쯤 세상의 호구로 살아본 사람들, ‘실패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용기보다는 좌절이라는 이름 쪽에 더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에게 텁텁한 위로를 건네는 글이다. 이모는 조카들과 함께한 눈 맞춤과 온기들이 얼마나 자신을 따뜻하게 데워 왔는지를 독자들에게 낱낱이 들려주고자 한다. 또한 이모 주변은, 조카들이 다녀간 곳과 다녀가지 않은 곳이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음을 알리고자 한다. 조카들이 헤집고 간 이모의 방은 종종 ‘난장판’이 되곤 하지만, 그들이 남기고 가는 자리마다 이모는 장난기 가득한 그들의 온기를 느낀다. 이제 이모는 하루라도 조카들을 보지 않으면 마음에 뾰족뾰족한 가시가 돋는다. 이모의 까슬까슬한 마음의 결을 순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쌍둥이 조카 녀석들. 이모는 이제 세상에 새로 온 쌍둥이 조카, 그 두 생명들과 뒤늦은 걸음마를 시작하려 한다. ‘인생에 넘어짐’, ‘세상에 부딪힘’, ‘그럼에도 다시 인생을 일으킴’이 그녀의 생(生)을 타고 신명나게 연주되는 그 작은 순간들을 이 책에서 살뜰히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 황금이모? 호구이모?

 

 

이 글에는 화려한 빛이나 눈부신 조명 따위는 없다. 자신을 비추는 조명 하나 없이 ‘이모’라는 자가 세상 속에 던지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이 글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 같은 것도 없다. 다만 그 대신 이 글은 세상에 주눅 든 사람, 혹은 ‘되는 일 하나 없네.’ 라는 볼멘소리로 하루를 닫는 어느 사람에게 찾아갈 수는 있다. 또 세상과 맞서는 일이 피곤해진 어떤 이들의 침대 머리맡에 한 자리쯤을 차지한 채, 미세한 위로를 건넬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 ‘나 같은 바보가 여기 또 있네.’라는 위안을 받을 수도 있고, ‘왜 저렇게 사누?’라는 안타까움을 쏟아 내며 이 여자의 인생에 간섭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또한 커다란 인생 굴곡 그 사이사이에서 혹시 내가 놓치지는 않았나 싶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행복’을 아주 조금은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들어가는 글’ 중에서

 

 

 

 

 

 

 

 

 

 

 

 

 

▶ 본문 속으로

 

 

수많은 이모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들을 내다본다. 그러나 그 찬란하고 오묘한 불빛이 자신에게도 불똥이 되어 튈 줄은 전혀 모르고 마냥 신기함과 뭉클함, 거룩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도배하곤 한다._13

 

이렇게 엄마가 된 딸들의 죄목은 줄줄이 사탕을 엮고도 남는다. 물론 그중 가장 으뜸인 죄목은 바로 ‘손주 보는 재미라도 있으셔야죠.’라는 말을 부모에게 흩뿌리고 다닌 ‘유언비어 유포죄’다._13

 

 ‘황금 이모? 호구 이모겠지.’_16

 

드라마에는 현실이 있고, 내 동생이 살아가는 현실에는 더더욱 드라마틱한 현실이 꿈틀거린다. 지켜만 보는 사람들은 ‘한 몸에 있는 세 개의 심장 박동’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전에 하나의 심장일 때보다 세 배 이상 무겁고 커다란 심장박동. 그 빛나는 짐들을 들고 정상에 오를 때까지 동생은, 그리고 내 동생을 포함한 수많은 이 시대의 동생들은 숨을 가쁘게만 몰아쉬었으리라._33

 

 

 

 

 

 

 

 

 

 

 

 

무임승차한 자는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법이지만 동생이 탄 열차는 참으로 다양한 풍경을 내게 보여 준다. 나는 지금 동생이 보여 주는 풍경 속에 잠시 머물고 있다. 내 옆 좌석에는 동생이, 그리고 동생의 남자친구에서 남편이 된 한 남자가, 그리고 그들 옆에는 쌔근쌔근 두 녀석이 앉아 있다. 그리고 함께 육아 열차에 올라탄 이모 하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두 녀석들을 경이롭게 바라본다._34

 

 

내가 승차권 없이 얻어 탄 이 열차는 언젠가 이 네 식구만의 열차가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있는 힘껏 이 열차에 오래 머무르고 싶다. 아직 이 두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그들에게서 보고 싶은 것들도 무척이나 많다. 기저귀 한 장면, 트림 한 장면, 배 밀기 한 장면, 뒤집기 한 장면,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는 그 명장면 들이 내게는 모두 다 소중하다._34

 

 

주말 내내 숙직, 휴일 없는 평일의 시작. 집에 들어온 게 삼 일 만이었다. 가족을 보지 못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가족을 만나는 ‘절대적 시간’ 없이 버텨야 하는 직장은 정말로 퍽퍽했다. 나는 자꾸 무언가 얹히고 있는 내 미래를 느꼈다._40

 

 

2인분의 산책이다. 허리가 잠깐씩 ‘나 끊어질 것 같아’라고 내게 말을 걸어오곤 한다. 그럴수록 나는 내 품을 더욱 세게 감싸 쥔다. 지금 내 품에는 내 품보다 더 커지고 있는 조카 녀석 하나가 동그랗게 안겨 있다. 세상에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일들이 많다. _43

 

 

 

 

 

 

 

 

 

 

 

 

 

 

이런 호구 같으니라고.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이렇게 힘주어 말하겠다. 내 인생에 참견할 사람, 번호표 들고 줄이나 먼저 서시라._57

 

 

아이들은 뱉어 버리고 싶을 만큼 쓰디쓴 약을 먹고 자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쓴 약을 삼켜야 하는 순간이 종종 나타난다. 어른들은 수시로 복용을 감당해야만 한다. 맛없는 인생을 조금 더 견뎌 볼 것이냐, 맛있는 인생을 찾아 떠날 것이냐. 인생은 조금씩 더 어려운 선택을 우리에게 먹이려 한다._116

 

 

보이지 않게 언니가 휘둘러왔던 폭력이 동생의 이력서에 자꾸 구멍을 만들고 있다. 화려하게 채워 주진 못해도 한 줄이라도 더 보탬이 됐어야 했다. 언니라는 자는 늘 한결같이 불안 불안한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다._116

 

 

동생은 이렇게 계속 동생만 밑지는 장사를 한다. 나는 다소 호구고 상당히 자주 백수였지만,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특히 동생에게만은 사업 수완이 퍽 좋은 장사꾼인가보다. 오늘도 조카들을 돌보며 오히려 내가 더 큰 은혜를 입는다. 어쩌면 나는 이제 더는 호구가 아닐지도 모른다._119

 

 

저, 답안지 좀 바꿔 주실래요? 인생 답안 좀 고치려고요._205

 

 

잔잔한 박수 소리가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올라갈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충분히 평범하고 충분히 특별한 인생, 누구에게든 잔잔하고 사소한 기회가 찾아간다. 그것만으로 이미 난 충분히 특별하다.(_240

 

 

마음이 텅 비었을 때, 무언가를 잃었을 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고 느낄 때, 그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꼭 내 마음인 것 같이 텅 비어 있는 노트 하나를 손에 쥐고 아무 말이나 닥치는 대로 쓰곤 했다._244

 

 

 

 

 

 

 

 

 

 

 

 

일희일비했던 모든 순간이 나의 글감이 되고,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온전한 삶이 된다. 내 인생 평생의 단짝, ‘글쓰기’가 나에게 말한다. ‘일희일비’는 오히려 축복이라고. 나 이제 마음껏 일희(一喜)하고, 양껏 일비(一悲)하리라!_245

 

 

수천 번, 수만 번의 갑갑함을 뚫고 나오는 것이 ‘말문’이라면 정말 그것은 아주 값진 ‘문(問)’이 될 것이다. 쌍둥이들처럼 쌍둥이의 이모도 지금 막 이 세상에 말문이 트이려고 한다. 이 말문이 트이면 이모도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게 될 듯하다. 너무 오래 기다렸고, 매우 갑갑했으며, 심히 느린 속도이긴 하지만, “이모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더 자라고 있단다.”_253

 

 

 

 

 

 

 

 

 

 

 

책 한 권 속에서 나는 잊고 있던 나 자신을 하나씩 하나씩 도로 주워 담았다. 여기저기 흩어졌던 ‘나’라는 조각들이 드디어 이 한 권의 책에 ‘완전체’인 ‘나’로 모였다. 이것은 쓰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일들이었다. 또한 이것은 조카들을 지나친 열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세상이었다._257

 

 

 

 

짐으로 얹혀 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꽤 길어졌다. 그런데도 동생은 그 긴 시간을 두말없이 기다려 줬다. ‘가끔 보면 성질이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은 것 같다’라고 동생 뒤에서 괜히 흉을 보다가도 내가 가장 힘들 때마다 그 ‘성질’을 전혀 부리지 않고, 침묵으로 나를 응원해 줬던 사실을 기억해 본다. 나는 이 책을 쓰며 그 대단한 사실을 이제야 되살린다._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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